시설 장애인 96% 중증… ‘老老돌봄’ 위기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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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률적 탈시설 강행 시 고령 부모에 돌봄 전가… 다원적 주거 선택권 보장해야”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정책의 현황과 과제: 돌봄 선택권 확대를 중심으로’ 보고서 표지 일부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자의 대다수가 중증 발달장애인인 가운데, 공적 인프라 없이 탈시설 정책이 기계적으로 추진될 경우 고령 부모가 돌봄을 떠안는 이른바 ‘노노돌봄’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전국 등록장애인은 263만여 명이다. 이 중 65세 이상 비율이 55.3%에 달해 장애 인구의 초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전국 1,524개 거주시설에 머물고 있는 약 2만 7천 명 가운데 96.5%가 중증 장애인이고, 지적장애와 뇌병변장애가 전체의 약 90%를 차지한다. 평균 거주 기간은 24.3년이며, 82.0%는 상시 약물 복용이 필요한 고도의 의료 개입 대상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 16일 발간한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정책의 현황과 과제: 돌봄 선택권 확대를 중심으로’는 이러한 현실이 2027년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본사업 전면 시행과 맞물려 심각한 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적 대안 인프라 없이 기계적 시설 퇴소가 강행될 경우,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돌봄 부담이 고령 부모에게 그대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이 위기는 탈시설 정책을 둘러싼 갈등과도 맞닿아 있다. 당사자 단체는 전면 탈시설화를 통한 주거 선택권 회복을 촉구하는 반면, 부모 단체는 의료·돌봄 인프라 부재로 인한 생존권 위협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한다. 보고서는 이 갈등의 구조적 원인으로 과거 탈시설 운동을 이끈 주체인 지체장애인 중심의 특성과, 현재 시설 거주인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특성 사이의 불일치를 지목했다.

보고서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 문제도 함께 짚었다. 보호자나 소수 전문가에 의한 일방적 대리결정을 지양하고, 다층적 평가 기구를 통해 당사자의 비언어적 선호까지 반영하는 ‘지원된 의사결정’ 체계의 전면 도입을 촉구했다. 시설 퇴소 결정 과정에서 당사자의 실질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절차적 기반으로, 현행 대리결정 관행이 오히려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해외 사례는 이 위기를 극복할 실마리를 보여준다. 미국은 1999년 연방대법원의 옴스테드 판결을 기점으로 탈시설화를 본격 추진하면서, 공공재정인 메디케이드가 장애인의 지역사회 이동 경로를 직접 따라가는 MFP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동시에 독립 거주가 위험한 최중증 지적·발달장애인을 위한 집중 요양시설 ICF/IID는 공적 재정으로 유지해 무리한 전면 폐쇄의 부작용을 완화했다. 지역사회 전환과 시설 존치를 병행한 이 이중 구조는 국내 부모 단체가 제기하는 생존권 우려에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는 현실 가능한 대안으로 평가된다.

재정 구조의 불균형도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혔다. 현행 5:5 국고보조 매칭 방식은 지자체 재정자립도에 따른 인프라 격차를 구조적으로 벌려놓는다. 서울의 재정자립도는 79.1%에 달하지만 전남은 27.1%, 경북은 31.0%에 불과하다. 재정 여건이 취약한 지자체일수록 매칭 부담이 복지 인프라 확충의 발목을 잡는 구조다. 사회복지 분야 국고보조금은 이미 전체 보조금의 64.2%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7년 대비 31조 9천억 원 이상 증가한 상태다. 탈시설 정책이 일률적으로 적용될 경우 지역에 따라 장애인이 누릴 수 있는 돌봄 서비스의 질이 크게 엇갈릴 수밖에 없다.

보고서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세 가지 핵심 대안을 제시했다. 공공재정이 거주인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는 한국형 MFP 프로그램 도입과 개인예산제를 결합한 3단계 재정 전환 로드맵, 주거 계약과 돌봄 서비스 계약의 엄격한 분리 법제화, 17개 광역지자체의 현장 밀착형 실행계획 수립 의무화가 그것이다. 탈시설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시설의 기계적 폐쇄가 아니라, 장애 정도에 맞춘 다원적 주거 선택권 보장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다.

연구를 맡은 이채정 부연구위원은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정책의 목표는 시설의 기계적 폐쇄가 아니라 실질적 삶의 질 향상과 다원적 주거 선택권 보장에 있다”며 “중앙정부의 포괄적 재정 책임과 지자체의 집행 자율성이 결합된 실효성 있는 대안이 속히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