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숙원 ‘장애인권리보장법’ 국회 통과…탈시설화·자립생활 권리 법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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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보호 대상’에서 ‘권리 주체’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시작일 뿐, 탈시설지원법·시설폐쇄법으로 나아간다”

<사진=유튜브 채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갈무리>

장애계의 20년 숙원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서미화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장애인을 시혜와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규정하고, 탈시설화와 자립생활 권리를 명문화한 이 법은 우리나라 장애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 법안은 2008년 우리나라가 비준한 ‘UN장애인권리협약’의 취지를 바탕으로, 기존 지원 위주의 복지 정책을 실질적 권리 보장 체계로 전환하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장애인의 존엄권·평등권·자기결정권·정책 결정 참여권을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거주지 선택과 삶의 방식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했다.

특히 이번 법안의 핵심은 ‘탈시설화’와 ‘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를 명문화한 것이다.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는 시설 중심 보호 체계에서 벗어나,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권리를 국가가 책임지도록 명확히 한 것이다. 이와 함께 5년 단위 장애인정책종합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 수립, 3년 주기 권리보장 실태조사도 의무화됐다. 법은 공포 후 2년 뒤인 2028년 4월께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법안은 2017년 처음 발의된 이후 지난 제21대 국회에서 상임위를 통과하고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폐기되는 등 부침을 겪었다. 제22대 국회에서 제정된 만큼 장애계의 감회는 남다르다.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이행이라는 맥락도 더해졌다.

본회의 통과 직후 국회 앞에서는 기념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수진·김예지·박희승·최보윤 국회의원과 이경혜 한국장애인개발원 원장, 이형숙·오영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회원 등 장애계 관계자 5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서미화 의원은 “권리보장법 전면 시행까지 남은 2년 동안 당사자와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히 담아 시행령 마련과 관계 법령 정비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시혜적 복지를 넘어 당당한 권리의 주체로 서는 여정에 함께해 주신 모든 장애계 동지와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소회를 전했다.

조상지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당 대변인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법 제정은 거주시설의 장벽에 가로막혔던 장애인의 삶을 지역사회 중심으로 재정립하겠다는 국가의 엄중한 약속”이라며 “격리와 배제의 시대를 넘어 권리와 존엄의 시대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영과 동시에 ‘다음 과제’를 선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는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오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탈시설지원법 제정과 시설폐쇄법 제정을 향한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연대는 “탈시설지원법이 없으면 탈시설은 가능한 사람만 하는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시설에서 나온 뒤 살 집, 활동지원, 일자리, 소득, 의사소통 지원 등이 법과 예산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탈시설의 언어를 빌린 선별에 그칠 뿐이라는 주장이다. 시설을 ‘거주 선택지’로 남겨두는 한 수용은 끝나지 않는다며 시설폐쇄법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연대는 또 “시설에서 폭력과 학대가 반복되어도 국가는 관리 강화, 점검 확대로만 대답해왔다”며 “그 결과 시설수용체계는 오히려 연장돼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보건복지부를 향해서도 “‘시설 민주화’ 같은 말로 수용체계를 연장하지 말고 탈시설을 국가의 책무로 세우라”고 촉구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향후 하위법령 제정과 정책 구체화 과정을 거쳐 장애당사자의 삶에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탈시설지원법·시설폐쇄법 등 후속 입법 과제와 시행령 정비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