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회 전국장애인문학제 대상 수상작가 ‘나다(필명)’

“휴… 엄마 너무 힘들어. 언어수업 또 가야 돼. 너 혼자 가면 좋겠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치료실을 오가는 길, 혼잣말처럼 툭 내뱉은 말이었다. 아이가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쉽게 내뱉은 말이었다.
도토리는 자폐성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시간들이 아주 길게 이어졌다.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평범한 순간들이 우리에게는 매번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 무렵 나는 자주 생각했다. 이 아이는 평생 나 없이는 어디도 갈 수 없겠구나. 병원도, 치료실도, 학교도, 나는 이 아이를 태우고 실어 나르며 늙어가겠구나.
그런 근심이 매일 조금씩 쌓여가던 날들이었다. 어느새 혼잣말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고, 나는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듯 아이 앞에서 속마음을 다 쏟아내기도 했다. 도토리는 그 말을 다 듣고도 “네.” “고맙습니다.”라고 고장난 로봇 기계음처럼 대답하곤 했다. 아이와의 소통이 나만의 일방적인 푸념이 되어가던 그때, 나는 치료실 스케줄과 라이딩에 많이 지쳐갔고, 그래서였는지 아이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말을 무심코 내뱉어 버렸다.
“너무 힘들어… 귀찮아.. 쉬고 싶어..”
“언어 수업 혼자 가요?”
아이가 내 말을 듣고, 처음으로 알맞은 질문을 던져왔다. 깜짝 놀랐다. 안 듣는 줄로만 알았는데 내 말을 알아듣고 답을 한 것이다.
“아니야, 날씨가 더워서, 물병 때문에 이 손가방도 들고 가야 해. 더 크면 그때는 아마도 가까운 곳은 혼자 갈 수 있을 거야. 그때는 꼭 혼자 다니자.”
내가 한 말을 다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귀가 안 들리는 게 아니니 듣기는 듣고 있었던 거였다. 아이 앞에서 말조심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감각통합 센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부엌에서 초코케이크와 우유를 간식으로 준비했다.
“간식 먹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이상했다. 아이를 찾아보니 어느새 현관 밖으로 나가 사라지고 없었다.
밖으로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아봐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말을 그날 처음 몸으로 이해했다. 나는 당황한 채로 경찰서에 신고해 도움을 요청하고, 동네를 뛰어다니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평소 과자를 사러 가는 걸 좋아했던 편의점도 가보고, 둘이 자주 가던 무인아이스크림 가게도 찾아가 봤지만, 아이는 없었다. 놀란 나는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당황해서 머리도 새하얘지고 어디로 가서 아이를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문득, 혹시 혼자서 언어 수업을 들으러 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걸어가기엔 너무 먼데, 거기를… 설마…. 나는 차를 몰고 언어치료센터 쪽으로 가며 아이가 있는지 찾아봤다. 길을 기억하고 혼자 걸어갈 수 있는 아이였던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손이 떨렸다. 그런데 한참을 운전해 언어치료실에 거의 다다를 즈음, 도로에서 씩씩하게 길을 걷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도토리가 정확히 언어치료실이 있는 방향으로, 자기가 아는 길을 따라, 혼자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찾아 헤매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너 혼자 가면 좋겠다”는, 지치고 힘없는 엄마의 푸념을. 그리고 아이는 그 말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여, 정말로 혼자 걸어간 것이다.
내가 들고 가야 한다고 했던 물병이 든 가방도 손에 들려 있었다. 날씨가 더워 땀을 흘리면서도 아이는 웃으며 걷고 있었다. 엄마 없이 혼자 걸어서 조금은 신난 모습이었다. 나는 자동차 창문을 내리고 “도토리!” 하고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엄마!” 아이는 날 보고 해맑게 웃었다.
“이렇게 먼 길을 어떻게 기억하고 혼자 걸어서 온 거야… 너무 대견한데… 그래도 엄마한테 말을 하고 나갔어야지!”
엄마가 놀랐다는 걸 모르는 도토리는 그저 자기 앞에 나타난 엄마를 보고 해맑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엄마 없이 혼자 걷는 게 좋아?”
“혼자 갈 수 있어요. 혼자가 좋아.”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아이는 듣고 있었다.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내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보여주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달라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눈을 맞추지 않아도, 아이는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 나는 정말 몰랐다. 아이가 창밖으로 보던 길을 그렇게 다 기억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아이가 갑자기 없어져서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반가운 일이기도 했다. 아이도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부쩍 자라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니까. 그때부터 도토리는 종종 혼자 동네를 산책한다. 허락 없이 집을 나선 일은 엄마인 나를 놀라게 했지만, 도토리가 혼자 걷고 싶어 했던 그 마음 덕분에 우리 사이에는 여백 하나가 생겼다.
더 크면 혼자 버스도 탈 수 있겠지. 아이보다 오히려 엄마인 내가 더 겁이 많았다는 걸 알았다. 비싼 치료에 수십만 원을 쓰면 무얼 하나. 정작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 아이를 따뜻하게 토닥여주지 못하고 힘든 말만 쏟아냈는데. 엄마인 내 마음을 돌보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 아이와 나,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같이 해봐야겠다.
그날 혼자 걷던 도토리의 미소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