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 소통과 정보접근, 이동, 학습 등 삶의 전 영역에서 극단적인 제약-

헬렌 켈러는 1880년 6월 27일 미국 앨라배마에서 태어났다. 우리에게는 위인전에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대부분 장애를 극복한 입지전적인 인물 정도로 기억되곤 한다.
헬렌 켈러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동시가 가지고 있는 시청각장애인(Deafblind)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145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인들이 기억할만한 위대한 인물로 남아있다.
오늘은 헬렌 켈러가 태어난 날이자 ‘시청각 장애인의 날’이다. UN이 지정한 이 날은 시각과 청각의 이중장애로 인해 세상과의 단절 속에 살아가는 시청각장애인의 존재를 조명하고, 이들의 권리 보장과 사회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시청각장애는 단순히 두 감각의 장애가 겹친 것을 넘어서, 소통과 정보접근, 이동, 학습 등 삶의 전 영역에서 극단적인 제약을 초래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도 시청각장애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고, 제도적 지원도 미비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역시 시청각장애인을 ‘독립된 장애유형’으로 인정하지 않아, 대부분 시각 또는 청각 중 하나의 기준에 따라 단편적인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데 그치고 있다.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A씨는 본인을 이렇게 표현한다. “외계인이 된 것 같아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우주속에 혼자 붕 떠서 살아가는 느낌입니다.” 24시간 옆에 붙어서 손가락의 감각으로 수어를 전달하는 그와 그의 아내의 모습을 보면 흡사 외계인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늘(6월 27일) 국회에서는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예지 의원(국민의힘)이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첫 제정법인 ‘시청각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시청각장애인을 독립된 장애유형으로 정의하고, 전문지원사 제도와 지원센터 설치를 포함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사회참여 보장을 골자로 한다.
시청각장애인의 삶은 단절된 감각만큼이나 사회적 고립 속에 있다.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는 현실에서, “말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는 사실은 단순한 신체적 특성을 넘어 사회가 만든 고립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정 안에, 제도 바깥에 방치되어 있다.
‘세계 시청각장애인의 날’은 단지 이들을 위한 기념일이 아니다. 감각의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외치고 있는 “존재의 증명”에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는 경고이자 요청이다. 더 이상 시청각장애인의 존재가 제도의 사각지대에 머무르지 않도록, 이 날이 우리 모두에게 인식과 실천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