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잡은 핸들, 다시 뛰는 심장… 중장년 장애인의 택시 인생 2막
대왕기업 합류한 뇌병변장애인 최종옥 기사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

<사진=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 제공>
장애인의 지속 가능한 고용과 사회 참여를 위한 노력은 시대를 관통하는 숙제이다. 본지는 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에서 발간한 ‘2025 취업사례집 일-원’에 소개된 사례를 바탕으로, 일터에서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가고 있는 장애인 취업자들의 이야기를 기획 시리즈로 전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넘어 실제로 일하며 성장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모습을 통해, 장애인 고용이 어떻게 개인의 삶과 조직, 사회를 변화시키는지 살펴본다.[편집자주]
최근 국내 택시 산업은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택시 운전자 수는 코로나19 이후 크게 줄어들어 전국 택시 운전자는 약 23만7000명으로 코로나 이전보다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기사 평균 연령은 약 63세에 이르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심야 시간대 승차난과 같은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으며, 업계에서는 새로운 인력 공급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편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 장애인 고용률은 약 2% 수준으로 일반 노동시장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전문가들은 신체적 제약뿐 아니라 직무 선택의 제한, 직업훈련 기회의 부족, 사회적 인식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얻은 중도장애인의 경우 기존 직업으로 복귀하기 어려워 재취업 장벽이 더욱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가 운영하는 택시운전기사지원사업은 새로운 고용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 사업은 택시 운전 자격 취득 교육부터 취업 연계, 초기 정착 지원까지 이어지는 통합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이 사업을 통해 총 13명의 장애인이 택시 운전기사로 취업했다. 취업자의 61.5%는 지체장애인이었으며, 50대와 60대 중장년층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운전직이 중장년 장애인에게 비교적 현실적인 재취업 경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운전 직무는 일정 수준의 신체 기능만 유지된다면 업무 수행이 가능하고, 근무 시간 조정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장점이 있다. 실제로 국내 택시 산업은 개인택시와 법인택시를 합쳐 약 25만 대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법인택시 회사 대왕기업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장애인 운전기사 채용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2019년부터 서울시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와 협력해 장애인 운전기사를 채용하고 있으며 현재 6명 이상의 장애인 기사가 근무하고 있다. 회사 측은 복지수당 지급과 맞춤형 배차 등을 통해 안정적인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대왕기업 오세철 전무는 “택시업계는 고령화로 인력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센터와 협력하면 교육과 적응 지원이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애인 채용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사업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은 최종옥 씨의 사례는 중도장애인 재취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 씨는 건축회사 대표로 30년 가까이 일했지만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후 2년 동안 재활 치료를 이어가며 사회 복귀를 고민하던 그는 센터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택시 운전에 도전하게 됐다.
최 씨는 자격시험에 한 번에 합격한 뒤 택시 운전기사로 취업했다. 그는 “처음 외국인 승객을 태웠을 때 불편함이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며 운행했는데, 하차할 때 팁을 받으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규칙적인 근무가 시작되면서 생활 리듬이 안정됐고 신체 기능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례가 단순한 개인 성공 사례를 넘어 노동시장 구조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직업재활 분야 전문가들은 운전직, 서비스직, 디지털 기반 직무 등 비교적 접근 가능한 직무를 중심으로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직업재활 연구자들은 “중도장애인의 경우 기존 직업으로 복귀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무 전환형 재취업 프로그램이 중요하다”며 “택시 운전처럼 일정한 기술 교육을 통해 진입할 수 있는 직종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택시는 이제 일부 중도장애인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통로가 되고 있다. 고령화로 인력난을 겪는 택시 산업과 재취업의 기회를 찾는 중장년 장애인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고용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제도적 지원과 기업의 참여가 확대된다면 이러한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