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느린 학습자 청년들의 새 일터, ‘청년밥상문간 슬로우 이대점’ 문 열다

image_print

청년밥상문간, 직무교육 수료 청년 7명 채용… 개점식서 앞치마·명찰 수여

긴장한 기색의 청년 일곱 명이 무대 위에 나란히 섰다.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박수 소리가 작은 공간을 채웠다. 3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밥상문간 슬로우 이화여자대학교점’에서 경계선지능 청년자립지원사업 ‘청년숲’ 성과를 공유하는 개점식이 열렸다.

이화여대 인근 이 자리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문수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이대점은 제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 후 처음 만든 지점”이라며 “방송 이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대 인근에 자리잡았다”고 밝혔다. 개점 이후 일반 식당 형태로 운영해온 공간이 이날 느린 학습자 청년들의 일터인 ‘슬로우점’으로 새로 문을 연 것이다.

청년밥상문간은 이문수 신부가 2017년 12월 정릉에서 시작한 식당이다. 계기는 2015년 고시원에서 생활고로 홀로 세상을 떠난 한 청년 여성의 죽음이었다. 2021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 당시 이 신부는 “밥은 가장 기본인데, 적어도 굶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3,000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무료 대신 저렴한 가격을 택한 것도 “가난하다는 걸 드러내지 않아도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식당”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방송 이후 후원이 이어지며 정릉점을 시작으로 이대점, 슬로우 낙성대점, 슬로우 대학로점, 슬로우 안산점 등으로 확장됐다.

슬로우(Slow)는 이름 그대로 느린 학습자를 위한 일터 모델이다. 이 이사장은 “슬로우 대학로점에서 청년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지점도 슬로우점으로 바꿀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앞치마를 받은 청년 7명은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약 4개월, 총 123시간의 직무교육과 실습, 인턴십 면접을 거쳐 최종 채용됐다. 이 사업은 한 청년의 어머니가 이문수 이사장을 찾아가 느린 학습자 청년들을 위한 지원의 필요성을 알리면서 시작됐다. 교육 과정 중 촬영된 영상도 이날 상영됐다. 영상 속 청년들은 서툰 손놀림과 작은 목소리, 느린 반응 속도에 대한 걱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반복 훈련과 동료 간 격려를 통해 버텨온 과정이었다.

정만복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장은 환영사에서 “4개월 동안 성실하게 교육에 참여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한 청년들이 매우 자랑스럽다”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주위에 알리고 더 많은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이런 장소들을 더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더불어 정 관장은 참석자들에게 청년들을 지지하고 격려는 물론 지나가다 들러 식사도 하시라 전했다.

수여식은 이문수 이사장이 명찰이 부착된 앞치마를 직접 착용시키고 꽃다발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수여장에는 “청년 밥상 공간 슬로우 이화여대점의 정식 채용자로서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을 기대하며 이 명찰을 수여합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수여식을 마친 청년들은 무대에 올라 짧은 소감을 남겼다. 한 청년은 “부족하고 미숙한 저를 뽑아주셔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침착하게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발전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년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컸지만, 스스로의 다짐에서 용기가 생겼다”고 밝혔다. 전 직장에서 잘린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게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다”라며 흐느끼는 청년도 있었다.

느린 학습자 청년들에게 노동 시장의 문은 좁다. 속도를 기준으로 설계된 일터에서 이들은 쉽게 밀려난다. 청년밥상문간 슬로우점은 그 구조에 작은 균열을 내는 시도다. 일곱 명의 청년이 이제 그 자리를 지킨다. 이들이 오래, 제 속도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