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만원의 예산으로 일자리 창출과 관계 회복 이끌어
사람중심계획 결합한 제도 활성화 필요성 대두

이재윤 씨는 오랜 세월 실과 바늘을 다뤄왔다. 봉제 기술자로 수십 년을 일하며 생계를 이어왔지만 장애를 얻은 뒤 익숙했던 일은 멈춰 섰다. 일자리를 잃고 삶의 단절을 겪던 그의 자택 한편에 최근 수선방이라는 간판이 붙었다. 자신이 가진 기술로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목표를 직접 세우고 스스로 선택한 예산으로 만들어낸 일터다.
이 씨의 변화는 장애인 개인예산 제도에서 시작됐다. 개인예산제는 장애 당사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의 예산을 직접 운용하게 하는 방식이다. 공급자 중심의 기존 복지 서비스 구조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자기결정과 일자리 창출을 돕는다.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은 이 씨가 사람중심계획과 패스 회의를 통해 스스로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원했다. 아산사회복지재단 공동체 네트워크사업 위탁 수행기관인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약을 맺고 심화 활동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오랜 시간 쌓아온 수선 기술이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임을 발견했다.
그는 총 92만원의 개인예산으로 필요한 물품을 직접 골라 자택 일부를 수선방으로 꾸렸다. 지난 2일 열린 오픈식에는 복지관 직원을 비롯해 노원1종합사회복지관과 월계3동 주민센터 관계자 그리고 학습 동아리 너른바당 구성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오픈식을 앞두고 수선방을 찾은 한 이웃은 “이런 기술이 있는 줄 몰랐다”며 “늘 안부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반갑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 씨는 향후 6개월간 이웃을 대상으로 무료 수선 재능 나눔 활동을 이어가며 사회적 관계를 넓힐 계획이다.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는 개인예산제는 최근 정책적 확대 단계를 밟고 있다. 서울시 거주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서울형 2차 시범사업의 경우 2025년 5월 모집 당시 130명 중 90명이 선정됐다. 이들은 1인당 최대 240만원을 지원받으며 노원구 등 8개 시립복지관을 통해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학계와 의료계가 참여하는 운영위원회와 모니터링단이 정산보고서를 검토하며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역시 개인예산 시범사업 지역을 전국 33개 지자체로 확대 운영 중이다. 최근 열린 성과 공유회에는 내빈과 참여자 100여 명이 참석해 기관 사례를 발표하며 사회적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제도의 양적 팽창에 발맞춰 질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연구 지적도 나온다. 국내 제도는 여전히 기존 활동지원 인정조사표를 활용하고 있어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과 호주 그리고 캐나다 등 해외 사례가 철저히 자기주도성을 강조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재윤 씨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92만원이라는 비교적 소액으로도 진정한 자기 주도와 사람중심 접근이 결합될 때 실제 삶의 변화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금전 지원에 그치지 않고 당사자의 필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제도의 성패를 가름을 보여준다.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은 “앞으로도 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삶 안에서 의미 있는 역할과 경제적 자립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속해서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