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111개 기관 실태조사
적정 설치율 30.1%, 미충족 의료이용률은 비장애인의 3.3배

전국 공공의료기관의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절반 이상이 아예 설치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 의존도가 비장애인보다 훨씬 높은 장애인이 정작 의료기관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현실이 수치로 확인됐다.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시각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는 2025년 5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약 5개월간 전국 공공의료기관 111곳을 대상으로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시각장애인의 보행 접근성과 이용 편의 실태를 현장에서 직접 점검했다.
조사 대상 편의시설은 점자블록, 점자표지판, 점자안내판, 음성안내장치 등 총 10,728개다. 이 가운데 기준에 맞게 설치된 적정 설치는 30.1%에 그쳤다. 미설치는 53.3%로 절반을 넘었고, 설치는 됐지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부적정 설치도 16.6%에 달했다.
항목별로 보면 점자블록은 2,814개 중 적정 설치율이 41.0%였지만, 미설치율도 33.1%에 이르렀다. 점자표지판은 7,692개 중 적정 설치율이 26.0%에 그쳐 조사 항목 중 가장 낮았으며, 미설치율은 61.3%로 가장 높았다. 점자안내판과 음성안내장치는 각각 36.9%의 적정 설치율을 보였다.
이 수치는 일반 공공시설과 비교해도 현격히 낮다. 서울 마포구의 공공시설 전체 장애인 편의시설 적정 설치율은 2024년 기준 79.2%로 집계됐다. 공공의료기관의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적정 설치율 30.1%는 이보다 49%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의료기관이 오히려 더 낮은 접근성을 보이는 셈이다.
현장 조사에서는 미설치 외에도 부적정 설치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음에도 재질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거나 점자 표기가 잘못 기재된 경우가 있었고, 수도꼭지 냉·온수 구분 점자가 누락된 사례도 적발됐다. 흰지팡이가 걸리거나 빠질 위험이 있는 배수시설에 보호 덮개가 없는 경우, 선형블록 주변 보행로 폭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사례도 다수였다.
이 같은 물리적 접근 장벽은 장애인의 의료 이용 불평등과 맞닿아 있다. 2023년 기준 장애인의 미충족 의료이용률은 17.3%로, 전체 인구 평균 5.3%의 3.3배에 달한다. 장애인은 연간 외래 이용일수가 35일로 전체 인구 평균 18.5일의 약 두 배에 이르고, 입원일수도 20.1일로 전체 인구 평균 2.7일의 약 일곱 배에 달한다. 의료 의존도는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정작 의료기관 접근에는 더 큰 장벽이 놓여 있는 것이다.
2022년 말 기준 전국 등록 장애인은 약 265만 3,000명으로 총인구의 5.2%를 차지한다. 이 중 65세 이상 고령 장애인 비율은 2024년 기준 55.3%로 절반을 넘어섰다. 장애 인구가 고령화할수록 의료기관 접근성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추진할 ‘제1차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을 통해 장애친화 의료기관을 5년 내 8개 시도 이상으로 확충하고, 장애인 건강검진기관을 112개소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2028년까지 장애인 진료 관련 건강보험 수가 모델 개발도 추진한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현장 실태는 정부 계획과의 괴리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중앙회 김재룡 회장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공공의료기관의 보행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련 법령의 기준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현장 중심의 개선 조치를 강화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