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록 거부 취소 판결…쉬운 문장과 그림으로 판결 내용 설명
IQ뿐 아니라 일상생활 제약 종합 판단…장애인 사법 접근 지원 확대

서울행정법원이 지적장애인의 장애인 등록 거부 처분을 취소하면서 쉬운 문장과 그림으로 판결 내용을 설명한 ‘쉬운 판결문(Easy-read 판결문)’을 제공했다. 올해 시행된 대법원의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사법접근 및 사법지원에 관한 예규’가 실제 재판에 적용된 첫 사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강우찬)는 지난 25일 A씨가 서울 양천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 정도 미해당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하고, 별도의 쉬운 판결문을 함께 제공했다고 밝혔다.
A씨는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를 받아 시설에서 성장했으며, 중학교 무렵부터 우울증과 강박 증상, 뇌전증 등을 겪으며 장기간 정신병원에서 생활했다. 최근 실시한 세 차례 지능검사에서는 IQ 61~67이 측정됐고, 여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부터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천주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지적장애인 등록을 신청했지만, 국민연금공단은 검사 태도와 과거 검사 결과 등을 이유로 지적장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양천구는 장애인 등록을 거부했고, A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장기간 A씨를 치료한 전문의의 진단과 법정에서 직접 진행한 신문 결과를 종합해 A씨가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중교통을 혼자 이용하지 못하고 식사 준비를 스스로 하지 못하는 등 사회적응과 일상생활 전반에서 지원이 필요한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장애의 핵심은 개인의 손상이 아니라 그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어떤 제약을 받는지에 있다”며 “지적장애 여부는 지능지수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서 겪는 제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별도로 작성한 5쪽 분량의 쉬운 판결문에서 “재판을 낸 원고 OOO씨가 이겼습니다”, “법원은 당신을 지적장애인으로 인정합니다”라고 결론을 먼저 설명했다. 이어 구청의 처분 내용과 법원의 판단 이유, 판결 이후 달라지는 사항을 쉬운 문장으로 안내했다.
판단 근거는 “오랫동안 당신을 직접 만나고 치료한 의사들의 말은 믿을 만합니다”, “판사도 법정에서 당신을 직접 만나 질문했고 당신이 보통의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판결의 효력은 “당신은 지적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법이 정한 장애인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했다.
판결문에 사용된 삽화는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제작됐다. 재판부는 사법정책연구원의 ‘이해하기 쉬운 판결서 작성방안’을 AI에 학습시켜 이미지를 생성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장애인이 재판 결과를 직접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동안 전문적인 법률 용어로 작성된 판결문은 장애인이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으며, 이번 쉬운 판결문은 재판 결과와 그 이유를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됐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번 사례가 2022년 첫 쉬운 판결문 작성 이후 4년여 만에 나온 사례이자, 올해 시행된 대법원 예규에 따라 작성된 첫 이지리드(Easy-read) 판결문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예규는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가 판결문 등 사법 정보를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쉬운 자료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그림이나 영상 등 이해를 돕는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