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장애인 복지수급자 취업해도 급여 유지 보장하는 법안 시행

영국 정부는 취업을 원하는 장애인 복지수급자가 수당 삭감 걱정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안을 지난 9일 공식 발효했다. 한국에서도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가 취업할 경우 소득 증가로 생계급여가 삭감되는 복지 함정 문제가 고질적으로 지적돼온 만큼, 이번 영국의 사례는 국내 제도 개선에 중요한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노동연금부가 이날 발효한 법안의 핵심은 취업 시도 자체가 수당 재평가의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장애인 수급자가 일자리를 얻는 순간 고용·지원수당, 개인자립수당, 통합공제 건강 요소에 대한 재평가가 자동으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수당이 줄거나 중단될 위험이 있었고,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취업을 막는 장벽으로 작동해왔다.
영국 노동연금부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장애인과 질병을 가진 사람 가운데 37%가 수당 상실의 두려움을 이유로 취업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영국 내 장기 질병으로 인한 실직자는 280만 명에 이른다.
영국 사회보장·장애부 장관 스티븐 팀스는 “병들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미래와 경제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번 법안에는 자원봉사 활동도 급여 재평가를 촉발하지 않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장애인 당사자 단체와의 협의 과정에서 나온 권고를 직접 반영한 결과다.
정신건강 지원단체 멘탈헬스 UK의 브라이언 다우 대표는 “재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취업의 첫 걸음부터 막는 큰 장벽 중 하나였다”며 “취업을 시도할 권리는 장애인이 일자리나 자원봉사를 찾을 때 안전망을 확보하게 하는 실용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학습장애 자선단체 멘탭의 존 스파크스 대표도 “복지 제도가 장애인에게 가장 큰 장벽인 경우가 많다”며 “수당을 보호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법안과 함께 향후 5년 간 고용 지원에 35억 파운드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25만 명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워크엘 프로그램과 향후 5년간 30만 명에게 개인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커넥트 투 워크’ 사업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 한국의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는 취업으로 소득이 발생하면 소득인정액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생계 급여가 자동 삭감되거나 수급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 취업으로 인한 소득 증가분보다 급여 삭감액이 더 커지는 역전 현상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장애인이 일을 하면 할수록 손에 쥐는 실소득이 줄어드는 이 복지 함정은 장애인의 근로 의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오랫동안 지적돼왔다. 취업 후 일정 기간 수당을 전액 유지하는 ‘완전 누적’ 방식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긴 하지만, 아직 제도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이 다양한 고용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취업 시도 자체가 수당 감소로 이어지는 구조적 위험을 법으로 차단하는 조치는 아직 없다.
장애인 고용 현장에서는 고용률 제고를 위한 선결 과제로 이 복지 함정을 꼽는다. 직업 훈련이나 취업 박람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제도 자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영국이 법안을 통해 취업 시도 자체가 수당 재평가의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한 부분은 한국의 제도 개선 논의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델이다.
특히 영국이 당사자 참여 기구인 협력위원회를 통해 정책을 설계하고, 자원봉사까지 수당 보호 범위에 포함시킨 것은 장애인 스스로가 일에 가까워질 수 있는 환경을 단계적으로 조성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영국의 노력이 실제로 장애인 고용 확대로 이어질지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복지 함정을 법으로 차단한다는 방향성 자체가 한국의 장애인 고용 정책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