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선지능인, 복지와 고용 양쪽에서도 배제
500만 명 넘는 추정 인구, 법적 정의도 고용 지원도 없이 노동시장 밖에 방치

지능지수(IQ) 71~84에 해당하는 경계선지능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를 차지하지만,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속하지 못한 채 고용과 복지 양쪽에서 배제돼 있다. 법적 정의조차 없는 이 700만 명은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한국 사회에서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된 노동력이기도 하다. 해외 주요국은 이미 이들을 노동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3회에 걸쳐 경계선지능인의 고용 현실과 해외 사례, 그리고 한국에 필요한 제도적 과제를 짚는다. [편집자주]
경계선지능인은 교육부 등 관계부처 합동 발표 기준으로 약 697만 명이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8월 주민등록 인구(약 5093만 명)를 근거로 565만~667만 명으로 추산한다. 어느 수치를 적용하더라도 최소 500만 명 이상이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에 놓여 있다.
이들은 지적장애 판정 기준인 IQ 70 이하에 해당하지 않아 장애인 복지 대상에서 빠진다. 동시에 일반 노동시장에서는 학습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채용을 기피당한다. 장애인 의무고용제의 혜택도, 비장애인 대상 취업 지원 프로그램의 실질적 효과도 누리지 못하는 ‘이중 배제’ 상태다. 보건복지부에는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법적 정의도, 판정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현행 제도 어디에서도 이들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경계선지능인이 공적 시스템에서 확인되는 거의 유일한 통로는 병역판정검사다. 병무청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8월까지 매년 약 800~1165명이 경계선지능 사유로 보충역이나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다. 2024년의 경우 검사 대상 22만1604명 가운데 1165명(0.53%)이 해당됐다.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이지만, 제도권에서 경계선지능인을 정기적으로 포착하는 사실상 유일한 지표다.
의료 현장의 지표도 주목할 만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이 공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기타 인지·자각 관련 증상(R41.8)’ 진료 환자가 2020년 2만5991명에서 2024년 4만842명으로 5년 새 57% 증가했다. 특히 9세 이하 아동 환자는 274명에서 818명으로 약 3배, 10대 청소년은 285명에서 691명으로 2.4배 늘었다. 이 진단코드가 경계선지능만을 특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지기능 관련 진료 수요가 아동·청소년 연령대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하는시민연구소가 2025년 7~8월 엠브레인리서치를 통해 경계선지능인 6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조사 결과는 고용 현실의 단면을 드러낸다.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하는 취업지원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42%였다. 이 가운데 실제 취업으로 이어진 경우는 12%에 그쳤다.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고용이 유지된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경계선지능 청년 203명을 대상으로 한 별도 실태조사에서도 취업률은 53.3%, 실제 근로 경험이 있는 비율은 32.9%에 머물렀다.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10년 후 가장 큰 걱정으로 취업 문제를 꼽았다. 한 전문 교육기관이 경계선지능 청년 20명에게 2년간 직업교육과 인턴 과정을 제공했지만, 일반기업 취업에 성공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유지가 쉽지 않다. 새로운 업무를 익히는 데 3~6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동료의 따돌림이나 고용주의 채용 취소를 경험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부산에 사는 경계선지능인 A(27) 씨는 물류센터 계약직 등을 전전했지만 업무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번번이 그만둬야 했다. 가장 오래 일한 기간이 3개월이었다. A 씨는 “일자리를 잃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대인·사회공포증이 생기고 우울감도 깊어졌다”며 “집에만 있으니 사회와 단절되고 고립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생산직과 외식업 등 단순 반복 업무 영역에서도 빠른 적응을 요구하는 현장 분위기가 장벽으로 작용한다. 적응에 실패한 경계선지능인이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다 고립과 은둔 상태에 빠지고, 이것이 범죄 피해나 노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부산연구원이 2025년 발간한 ‘부산시 경계선 지능인 지원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 지역 경계선지능인 수는 약 44만 명으로 추산된다. 해운대구 전체 인구 37만여 명보다 많은 규모다. 이들이 고용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노동력 손실, 복지 사각지대에서 비롯되는 공적 부조 비용, 범죄 피해와 사법 비용까지 합산하면 사회적 비용은 산정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지원 사각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IQ 검사에서 일부러 낮은 점수를 받아 장애인 판정을 시도하는 사례까지 현장에서 보고되고 있어, 제도 부재가 복지 재정의 왜곡된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는 “이론적으로는 사회생활, 직장생활 다 할 수 있지만 ‘뭔가 잘 안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며 “일찍 알아채기보다 학교 폭력이나 우울 등 문제로 병원을 찾았다가 검사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저출생·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백만 명 규모의 잠재 노동력이 제도 밖에 방치되고 있다. 이들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모든 대책의 출발점이다.

